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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세습 과정

담당부서 : 정치군사분석과(02)2100-5876

북한 정권은 수령독재체제와 세습체제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우선 김일성은 1960년대 후반에 독점적 단일지배체제를 구축한 이후 1970년대 들어와 김정일을 후계자로 하는 부자 권력세습을 단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김일성은 반당반혁명 종파행위를 명분으로 도전 세력들을 숙청해 나갔다. 숙청의 핵심 논거로 제시된 것은 주체사상에 기초한 계속혁명론과 수령론에 기초한 후계자론이었다. 그것은 결국 세습을 둘러싼 권력투쟁과 정치적 숙청 과정을 거쳐 유일체제 구축 및 후계체제 공고화를 정당화하는 정치체제로 구체화되었다.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후 당 비서국 조직지도부와 내각 등에서 업무경험을 쌓고 31세의 나이에 당 조직지도부장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운동’ 등을 주도하였으며, 1980년의 제6차 당대회를 통해 당중앙위원회 정위원, 당 정치국 위원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 비서국 비서, 당 군사위원회 위원 등으로 선출되어 당과 군을 주도하는 권한을 확보하였다. 이후 김정일은 핵심적 대외 문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김일성의 공식적 후계자로서 실질적인 지도력을 행사하였다.

1980년대 김정일은 북한 사회를 이끄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을 주도하였다. 김정일이 주도한 사회운동으로는 ‘속도창조운동’, ‘전당의 주체사상화’, ‘준법기풍 앙양’, ‘인민소비품 생산 운동’ 등이 있다. 1986년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과 1991년의 ‘우리식 사회주의’도 김정일의 주도적 작품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정일은 군사 지도자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하였다. 1990년5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1부위원장으로 선출된데 이어 1991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나아가 1992년 4월 ‘원수’ 칭호를 수여받은후, 1993년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북한의 모든 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후 유훈통치 기간을 거쳐 김정일은 1997년 말 노동당의 총비서로 추대되었고, 이듬해 9월 개정 헌법에 따라 권한이 강화된 국방위원장의 지위에 올라섬으로써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를 열었다. 김정일은 1990년대 중반 이래 심각한 경제난과 북핵문제 등을 둘러싼 국제사회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안정적인 권력 기반을 유지해 나갔다. 1964년 대학 졸업 후 30년간 당 사업을 통해 나름대로 후계자로서의 통치역량을 축적해 온 김정일이 구축한 세습 권력의 정치체제는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차별화된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수령 중심의 1인 지배체제이다. 김정일은 당 총비서 또는 국방위원장으로서 사회주의 국가권력의 양대 축인 당과 군을 장악하고 있었다. 주체사상은 이러한 1인지배를 정당화해 주었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모든 인민과 정치조직 및 기구가 수령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수령의 교시와 명령에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 군사우선주의이다. ‘선군정치’로 불리는 군사우선주의는 “군사를 국사 중의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군력 강화에 나라의 총력을 기울이는 군사선행의 정치”를 의미한다. “군대는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선군정치론은 북한 혁명과 건설의 주체 세력이 군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선군정치론은 사회가 군을 따라 배울 것을 독려한다. ‘군민일치모범군 쟁취운동’, ‘우리 학교 우리 초소 운동’ 등은 군과 사회의 일체화를 요구하는 운동들이다.

군대와 인민이 한마음 한뜻을 이룬다는 ‘군민일치’, 지휘관과 병사가 하나로 굳게 뭉쳐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관병일치’, 군사일꾼들과 정치일꾼들이 서로 합심하여 최고사령관의 지도로 사업을 이끌어 나간다는 ‘군정배합’ 등의 구호들이 선군정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선군정치 구호가 전면에 내세워지면서 군부는 다양한 민간 영역을 잠식했다. 군이 주요 건설사업에도 병력을 투입했다. 청류다리, 금릉2동굴, 태천발전소, 개천-태성호 물길공사, 평양-향산 관광도로 등은 군 주도로 이루어진 건설사업들이다. 선군정치는 침체된 북한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군의 안정적인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한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오랫동안의 피폐해진 경제 상황에서 노동의욕을 상실해버린 북한주민들을 산업현장에 동원하기 위해서는 군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강성대국론’이다. 김정일이 내세웠던 강성대국론의 기치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북한체제의 위기를 극복하며 김정일 체제의 출범에 맞추어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강성대국론은 북한 주민의 결속과 통합을 주도하는 정치적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강성대국론은 사상·정치, 군사, 경제 강국을 실현하자는 것이지만 북한 스스로는 ‘사상·정치·군사강국은 이미 달성되었고, 경제강국의 건설을 통해 2012년에 강성대국을 완성할 것’이라고 선전하여왔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이 체제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우리식 사회주의’ 원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우리식 사회주의’는 주체사상과의 연결고리를 가지는 북한식독자성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가오는 변화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두려움을 반영하는 반작용적 구호라고도 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북한은 ‘강성국가 건설’을 답습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정은은 세가지방도를 제시했다. 첫째, 당을 중심으로 군중을 단결시켜 일심단결을 이룩하여 정치사상 진지를 다지고 정치군사적 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한다. 둘째, 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혁명적 영군체계와 군풍, 군기’를 확립하고 조선인민내무군 장병들과 노농적위군 대원들은 전투정치 훈련을 더욱 강화한다. 셋째, 국방공업 부문에서 첨단무장 장비를 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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