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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이후~1980년대

6·25 전쟁 휴전 이후에도 북한은 각 시기별로 그 전술과 방식을 달리하여 대남 군사도발을 자행하였다. 북한은 남북문제의 주도권 확보와 자신들의 대내외적 실리 추구와 영향력 확보를 위해서 한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긴장 조성과 공격적 군사행위, 핵실험·미사일 발사와 같은 각종 도발을 지속하여 왔다. 북한은 전후 1,968건에 이르는 육상과 해상에서의 침투행위를 비롯하여 1072건에 이르는 총격과 포격, 습격, 해상교전과 선박 납치, 영공 침범과 미사일 가격 등 총 3,040건의 도발을 자행하는 등 화전양면전술을 지속해 오고 있다.(2014년말 누계 기준)

북한의 대남 군사 공격을 시기에 따라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1960년대에는 ‘남조선 혁명론’에 근거한 대남전략을 바탕으로 수차례에 걸친 국지성 군사적 모험을 감행해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은 동서 긴장 완화 등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북 대화를 추진하면서도 ‘남조선혁명투쟁’을 지속하는 양면 전략을 추구하며 도발 행동을 간간이 일으킴으로써 남북 관계 갈등을 유발하였다. 1976년 8월 18일 발생한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그 후 북한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발생한 우리 정치 상황의 혼란을 틈타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총리회담 실무접촉 등 대화를 제기하는 한편 대남도발을 병행하는 등 이중적인 행태를 지속하였다.

북한은 이전의 게릴라 침투 방식과는 달리 폭탄 테러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발을 감행하였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를 친선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이 아웅산 국립묘소를 참배할 때 이들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터뜨려서 부총리와 장관 등 수행원 17명을 사망케 하고 14명을 부상시키는 테러를 자행하였다. 이어 1987년 11월 29일 북한 공작원에 의해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승객 및 승무원 115명 등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 조사 결과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이 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KAL기를 폭파하라는 북한의 명령을 받고 이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다.

* 화전양면전술 : 상황이 불리할때는 대화를 제의하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는 무력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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