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조관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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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조관리제

북한 협동농장에서 분조(分組)란 협동농장의 최말단 기층조직이다. 따라서 분조관리제는 협동농장의 기층조직인 분조를 단위로 하여 실시하는 농장 내부의 운영관리 형태이다

배경

분조관리제는 김일성이 1965년 5월 강원도 회양군 포천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처음으로 제시했으며, 1966년부터 북한의 각 협동농장에서 실시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행정구역은 도시군 체계로 형성되어 있다. 이때 군 이하 리 단위는 1개의 협동농장으로 편재하고, 협동농장별 5~7개의 작업반, 작업반별 4~6개의 분조, 분조별 10~15명이 편성되어 있다. 이때 작업반은 협동농장의 생산규모와 지역적 조건에 따라 농산작업반, 축산작업반, 농기구 수리반 등으로 구성된다. 협동농장의 기본 생산단위는 작업반이지만, 작업반의 인원이 150여 명 정도이기 때문에 생산의 효율성과 전문성, 노동의욕고취 등을 이유로 분조관리제를 실시해 왔다.

북한은 분조관리제가 농민들을 집단경리의 관리운영에 적극 참여시키는 훌륭한 생산조직 형태라고 설명하면서, 분조관리제를 실시하는 이유에 대해 농업생산의 특성을 감안해 농민들의 자각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농업에 대한 국가의 기업적 지도를 철저히 하며, 사회주의 분배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운영방식

분조관리제는 협동농장의 각 분조들에게 일정한 면적의 경작지와 근로자, 농기구, 부림소(짐을 운반하거나 밭을 갈기위해 기르는 소), 그 밖의 생산도구 등을 할당하고 국가생산계획에 준하여 수확고 계획과 노력일(勞力日) 투하계획을 설정해 준 다음 생산계획량을 달성한 실적에 따라 식량과 현금을 분배해 주는 방식이다.

경제난 이후 북한은 1996년 새로운 분조관리제를 일부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분조 규모를 10~25명에서 7~8명 선으로 축소하고 친인척과 가족을 포함하여 분조를 구성하는 것도 허용하였다. 그리고 생산계획량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 주었으며 특히 계획 외의 초과생산분에 대해서는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식량난이 계속됨에 따라 농민들의 영농의욕을 높여 생산성을 증대시켜 보고자 분조관리제를 개선하여 운영한 방식이다. 2002년 7.1 조치는 새로운 분조관리제를 전면 확대하였을 뿐 아니라 포전담당제를 시범적으로 부분 실시하면서 분조단위별 분배권한을 부여하였다.

김정은 집권 이후 2012년 6월 28일에 분조단위를 4-6명 내외(2-3명의 분조도 존재)의 가족 단위로 더욱 축소한, 이른바 분조관리제 하의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하였고, 2014년 5월 3일에는 사회주의 기업책임 관리제의 일환으로 생산성 평가를 통한 차등 분배 원칙을 강조하며 초과 목표 생산물에 대한분배율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평가

분조관리제의 도입, 분조규모의 축소, 포전담당제의 실시, 개인영농의 허용 등은 북한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이다. 그러나 대체로 분조를 통해 증산된 알곡은 군량미로 군부에서 통째로 걷어가기 때문에 분조원들에서 정상적 분배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분조에 출석하지 않는 농장원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분조관리제의 기본적 형태는 유지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분조원들이 관리자에게 일정액의 금품을 제공하며 장사행위를 하는 등 그 경영방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도 분조관리제와 포전책임담당제, 책임경영강화와 분배율 확대 등을 통해 생산 증가를 도모하고 있으나 과도한 목표 할당과 각종 행사 동원, 원부자재 공급 부족과 주민들의 의욕 저하 등으로 실질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