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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남북 직통전화

남북 직통전화

  • 관련 검색어 :
  • 남북조절위원회, 남북적십자회담, 판문점 연락사무소, 5·24조치
1) 연원

해방이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완전히 차단 (’45.9.6) 되었던 남북 간 전화통신이 재개되기까지는 26년이나 걸렸다. 1971년 9월 20일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대한적십자 측이 회담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판문점 지역에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와 연락관 상주, 쌍방 연락사무소를 연결하는 직통전화의 가설·운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 북측 적십자회가 이에 동의함으로써 남북 간 직통전화 2회선이 가설되게 되었다.

이러한 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있는 자유의 집과 판문각에 각기 상설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였으며, 1971년 9월 22일 두 연락사무소를 잇는 역사적인 남북직통전화 2회선이 개통되었다.

2) 경과

이후 고위층의 평양방문을 위한 쌍방 실무자 간 비밀접촉에서 우리 측의 제의로 1972년 4월 29일 서울-평양 간 남북 직통전화 1회선이 비밀리에 가설되었다. 서울-평양 간 직통전화 개통 이후 평양을 방문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일성 간 접촉에서 남북직통전화 공식화에 합의하여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과 함께 「남북직통전화 가설 및 운용에 관한 합의서」가 공표됨으로써 남북조절위원회 회선이 공식화되었다.

또 1972년 8월 11일 적십자 본회담을 위한 25차 예비회담에서 남북적십자 중앙기관 간 2회선을 포함한 남북적십자 회담용 20회선을 개설하기로 합의하였으며, 같은 해 8월 18일 이를 개통하였다. 이어 1984년 11월 15일 제1차 남북경제회담에서 경제회담용 1회선 가설에 합의, 같은 해 12월 20일 개통하게 되었다.

1992년 5월 7일 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당국 간 업무를 담당하는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에 합의함으로써, 같은 해 5월 18일 판문점 평화의 집과 통일각에 각기 사무소를 개설하고 직통전화 2회선을 개통한 바 있다.

이후 대구-평양 항공교통관제소간 관제협정(’98.2.28 발효) 등 합의서 채택으로 1997년 11월 19일 대구-평양 간 항공관제용 직통전화 2회선이 개통되었으며(’01.9.18 인천-평양으로 이전), 남북해운합의서 및 동 부속합의서(’05.8.1 발효)에 따라 2005년 8월 12일에는 남북해사당국 간(서울-평양) 직통전화 2회선이, 11월 1일에는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개설 공동준비단회의 합의(’05.11.10 소장회의 시 사무소 운영 및 관리에 관한 합의서 서명 발효)에 따라 남북경제협력협의 사무소용(서울-개성) 3회선이 개통되었다.

이로써 현재 남북 간 합의에 의해 연결된 남북직통전화는 총 33회선이며 모두 판문점을 경유하여 연결되어 있다. 이 33회선 중에는 조절위나 경제회담 직통전화 등과 같이 당초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된 회선도 있으나, 지금은 이 회선들을 회담지원용 회선과 남북적십자연락사무소 직통팩스(’04.11.22 개통) 회선으로 전용하여 운용하고 있다.

한편 2010년 12월 현재 남북 간에는 지리적 여건 등으로 판문점을 경유하지 않는 남북직통전화 15회선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데, 군 상황실간 직통전화 9회선(경의선 6회선 ’05.8.15 설치, 동해선 3회선 ’03.12.5 설치)과 남북열차운행을 위한 직통 전화 6회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판문점을 경유하는 남북직통전화 33회선의 구성 현황은 다음과 같다.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자유의 집↔판문 각) 간 5회선, 회담지원용(서울↔평양) 21회선, 항공관제용(인천↔평양) 2회선, 해사당국(서울↔평양) 간 2회선, 경협사무소용(서울↔개성) 3회선 등이다.

3) 운용 현황

남북적십자 연락사무소와 남북연락사무소 간 직통전화는 평일(월~금) 매일 아침 9시와 오후 4시에 시험통화(업무개시 및 마감통화)를 하고 있으며, 토·일요일 및 쌍방 공휴일은 휴무하고 있다. 단, 평일 근무시간 후나 공휴일에도 어느 일방의 요청이 있으면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남북연락 채널의 핵심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남북적십자 연락사무소와 남북연락사무소 직통전화는 개통이후 북측에 의해 5차례나 일방적으로 중단된 바 있다.

첫 번째는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직후인 8월 30일 동해상에서 납북된 ‘제3신진호’ 송환 협의 전통문을 북한이 접수를 거부하면서 중단되었다가 1980년 2월 6일 남북총리회담 절차협의를 위한 제1차 실무대표접촉 합의에 따라 그 다음날인 2월 7일에 재개되었다.

두 번째는 남북총리회담을 계기로 재개된 남북직통전화는 제11차 실무대표접촉을 앞둔 1980년 9월 24일 북한이 일방적으로 실무대표접촉 중단을 선언한 그 다음날에 단절되었으며, 1984년 9월 18일 북한의 수재 지원문제와 관련한 적십자 실무접촉 합의에 의해 9월 29일 재개되었다.

세 번째는 북한이 1996년 9월 18일 북한 잠수정 강릉 침투사건 발생 후 단절시킨 바 있으며, 2000년 7월 31일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에 따라 8월 14일 재개되었다.

네 번째는 북한이 2008년 11월 22일 제63차 유엔총회 시 우리 측의 대북인권 결의안 공동제안을 사유로 단절시켰으며, 2009년 故 김대중 대통령 특사조의방문단 서울 방문 (8.21~23) 및 남북적십자회담(8.26~28)을 계기로 8월 25일 재개되었다.

다섯 번째는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 발표(’10.5.24) 이틀 후인 5월 26일 북한은 “판문점 적십자 연락대표 사업 완전 중지와 모든 남북 간 통신연계를 단절 한다”고 통보함으로써 남북 간에는 군 상황실 간 직통전화 이 외에는 사실상 모든 통신회선이 단절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 10월 18일부터 남북 민항 직통전화(관제통신망)는 재개되었으며 2011년 1월 12일부터 남북 간 연락사무소 직통전화도 다시 연결되었다.

이와 별도로 운용되고 있는 군 통신선도 단절시킨 사례가 있다. 그간 개성공단 출입을 위해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출입신청과 승인 등의 절차를 밟아 왔는데, 2013년 3월 27일 북측이 일방적으로 서해 군 통신선을 차단하였다. 북측은 이를 시발로 개성공단 통행제한에 들어가 끝내 개성공단을 잠정 중단하고 북한 근로자 전원을 철수시켰다. 일곱 차례의 남북당국 실무회담을 통해 8월 14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채택한 후, 9월 10일 군 통신선이 다시 연결되었으며 개성공단도 재가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