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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통치

신탁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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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 3상회의, 미·소공동위원회, 38선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에 유리하게 전개되면서 전쟁종결 후 처리해야 할 국제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1945년 2월의 얄타회담과 7월의 포츠담회담에 이어 9월 런던에서 미·영·불·중·소 5국 외상회의가 열렸고, 12월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국 외상회의가 열렸다. 이 모스크바 3상회의는 주로 극동 지역의 처리문제, 특히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의 관리와 한국의 독립문제 등이 토의되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12월 16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되었으며, 그 결과 모스크바 협정이 체결되었다. 모스크바 협정에서는 한반도의 처리문제가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고 결정되었다.
① 한국을 독립국으로 재건 발전시키기 위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② 한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돕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구성한다,
③ 한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완전 독립을 목적으로 미·영·중·소 4개국에 의한 최고 5년 기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하며 미·소 공동위원회가 구체안을 건의한다,
④ 주한 미·소 양군 사령부의 대표 간 회의를 2주일 이내에 소집한다는 등을 담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모스크바 협정의 핵심은 한국에 임시정부를 수립해 나가되 이를 지원 보장하기 위해 4대국이 5년 이내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내용이 알려지면서 한반도는 격렬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김구 등 임시정부 세력을 중심으로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결성하고 반탁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이승만, 한민당 등 대부분의 우익세력이 이에 가세하였다. 박헌영의 조선공산당도 초기에 반탁의 입장이었으나 박헌영이 평양을 방문한 후 찬탁으로 돌아섰다.

이와 같이 남한에서는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우익 진영이 반탁으로, 좌익 진영이 찬탁으로 갈려 대립이 격화되었다. 북한에서는 신탁통치에 찬성하면서 소련군이 조만식 등 민족주의 세력을 제거하고 김일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공산 정권 수립의 길로 나아갔다. 모스크바 3상회의를 통한 신탁통치 결정은 민족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킴으로써 한반도는 분단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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