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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해협력정책

화해협력정책

  • 관련 검색어 :
  • 대북 포용정책, 금강산 관광사업, 남북기본합의서, 남북정상회담,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지원, 6·15 남북공동선언, 베를린 선언, 흡수통일,

대북 포용정책이란 1998년 2월 25일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정책을 말하며, 대북 화해협력정책이라고도 한다. 이는 영어의 ‘engagement policy’에서 따온 것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관여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북한과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화해와 협력을 모색해 나가는 정책이라고 하겠다. 대북 포용정책을 두고 흔히 길 가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서는 바람 보다는 따뜻한 햇볕이 효과적이라는 이솝 우화의 한 토막에 착안하여 ‘햇볕정책’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간에 평화공존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감으로써 북한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사실상의 통일 과정에 들어가고자 했다. 또한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 경제적 파탄으로 체제이완 현상이 나타나고는 있으나 조만간 급속히 붕괴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북한을 화해와 협력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만이 한반도 질서의 급격한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현실적 선택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배경 하에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북정책 3대 원칙을 제시하고 향후 일관되게 추진할 대북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포괄적으로 언급했다. 첫째, 북한의 무력도발을 용납하지 않으며, 둘째,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하지 않고, 셋째,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에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경제 교류협력과 관련해서는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의 상황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순전한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것이 대북 포용정책의 핵심적 내용으로 되었고 정부 차원에서 그 구체적 내용과 실천조치를 발전시켜 나갔다.

김대중 정부는 안보와 협력을 병행 추진하고, 평화공존의 토대 위에서 통일지향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이룩해 나가며, 보다 많은 접촉과 대화와 협력으로 북한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고, 민족 전체의 공동번영이라는 관점에서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며,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하에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고,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간다는 점 등을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또한 대북정책의 추진방향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정경분리에 입각한 경제협력 활성화, 이산가족문제의 우선 해결,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탄력적 지원, 경수로 지원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 한반도 평화환경의 조성 등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대북 포용정책은 통일을 당장의 실현 목표로 보지 않고 ‘사실상의 통일된 상태’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통일 그 자체보다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입장에 서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 핵문제의 상황 진전을 보아가며 이 포용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1998년 4월 30일 남북 경제협력 추진 절차를 간소화하고 투자규모 상한을 철폐하는 등을 내용으로 한 ‘남북 경협 활성화 조치’를 발표하였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늘렸으며, 현대의 금강산 개발 및 관광사업 계획이 성사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1998년 6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트럭 50대에 소 500마리를 싣고 판문점을 통과하여 방북함으로써 전세계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1998년부터 방북 인원이 급증하여 2002년 말까지 총 37,572명을 기록하였고, 물자교역도 2002년에 3배 이상 증가하여 처음으로 6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남북 간에 선박 및 항공기 운항이 증가하고 통신 연결이 대폭 늘어났다.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회담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합의서가 양산되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 추진되고 철도·도로가 연결되었으며, 이산가족 상봉이 확대되었다.

대북 포용정책은 남북 간 교류협력의 양적 증대를 이루었으나, 그 추진과정에서 국민여론의 분열과 갈등을 빚었으며 북한을 일방적으로 지원해주기만 하고 얻은 것은 없는 ‘퍼주기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