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면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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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적십자회담,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1) 배경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한 차례 이루어진 후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6·15 공동선언’에서 2000년 8·15에 즈음하여 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합의하면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남과 북은 이산가족들의 상봉 횟수가 늘어나자 2000년 9월 20일~23일간 개최된 2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문제를 협의해 나간다는데 합의하였으며, 2002년 9월 6일~8일간 개최된 4차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의 기본방향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
남북 양측은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월까지 3차례의 실무접촉을 거쳐 2003년 11월 4일~6일간 개최된 5차 적십자회담에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건설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그 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착공이 미뤄지다가, 2005년 8월 31일 11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남북 공동행사로 이산가족면회소 착공식을 거행하였으며, 2년 뒤인 2007년 7월 12일 완공식을 가졌다.
2) 경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꾸준히 이루어졌으나, 이산가족 1세대의 경우 고령으로 빠르게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다양한 방법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우리 측은 상시 면회가 가능하도록 이산가족면회소 건설을 북측에 제의하는 한편, 화상상봉, 화상편지 등을 이용해서 빠른 시일 내에 보다 많은 인원이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우리 측의 이러한 제의에 대해 북한도 기존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방법이 자신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측면을 고려하여 면회소 건설에 호응해 왔다.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지역과 관련하여 우리 측은 접근성을 고려, 개성 등 서쪽 지역에 면회소를 설치할 것을 북한에 제의했으나, 북한은 이미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해 오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우선 금강산에 설치하고 추후 서쪽 지역에도 설치하자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러한 논의를 거쳐 2002년 9월 4차 적십자회담에서는 △이산가족면회소는 우선 금강산지역에 설치, 경의선 철도·도로가 연결되면 추가로 서부지역 설치 문제를 협의·확정 △금강산 면회소는 남북이 공동 건설하며 자재·장비는 남측이, 공사인력은 북측이 제공 △금강산 면회소 완공 후 면회 정례화 등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를 토대로 2003년 11월 5차 적십자회담에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건설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양측은 2004년 4~5월께 착공식을 갖고 이르면 2005년 상반기에 완공한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으며, 면회소 사무소를 만들고 상봉을 하지 않는 기간에는 면회소를 금강산관광객을 위한 숙소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산가족면회소 착공식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1년 반 이상 지연되었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가 다시 복원된 2005년 6월 5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에 따라 8월 31일 남북공동으로 착공식을 가졌다. 면회소는 5만㎡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2층 규모의 면회소동과 지상 3층의 면회사무소 2채, 경비실 등의 건물로 구성돼 있으며 건물 연면적은 1만 9,835㎡이다. 면회소동 1, 2층엔 600명을 수용하는 행사장과 회의실,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며 3, 4층에 호텔구조 78실, 5∼12층에 콘도구조 128실 등 총 206실의 객실이 마련되어 최대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정부는 이산가족면회소 건립을 위해 남북협력기금에서 대한적십자사에 550억원을 지원하였다.
이산가족면회소 공사는 착공 후에도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었으며,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07년 12월 7일 양측 적십자사 총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사무소 준공식을 가졌다. 면회소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양측은 면회소 완공 시 이산가족의 상시 상봉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9차 적십자회담에서 상봉행사 정례화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산가족면회소는 2008년 7월 11일 북한군의 총격에 의하여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다. 2008년 7월 12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를 완공하였으나, 우리 정부가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금강산 관광 중단 조치를 취한데 이어 북한이 2009년 들어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을 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전체가 대북 제재에 들어가면서, 이산가족면회소의 정상 운영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북한은 2010년 4월 우리 정부와 현대아산 소유 건물들을 동결조치(몰수)하면서 이산가족면회소도 여기에 포함시켰고, 2011년도 8월 현대아산의 잔류인원 16명을 철수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에도 이산가족면회소에서는 2009년 9월과 2010년 10월~11월, 2014년 2월 세 차례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실시되었다. 이산가족면회소가 거의 유지 관리가 되지 않는 상태에 있어, 상봉 행사를 앞두고 선발대가 방북해서 면회소 시설 재가동 준비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