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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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방한계선(NLL), 남북군사회담,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
1) 배경
서해교전이란 북한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여 우리 측 해군 함정에 먼저 공격을 가함으로써 남북한 해군함정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1999년 이후 2009년까지 세 번의 교전이 있었다. 1999년 6월 15일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제1차 연평해전’ , 2002년 6월 29일 역시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제2차 연평해전’ , 2009년 11월 10일 대청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대청해전’ 등이 바로 그것이다. 3차례의 서해교전으로 남북 양측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관계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전에도 북한 함정들이 서해 NLL 이남의 우리 측 해역을 침범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서해에서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남북 간에는 1990년부터 남북고위급회담과 남북 군사당국자 간 회담 등을 통해 논의가 있었고 북한도 NLL 이남이 남측 관할구역임을 확인한 바 있다. 또한, 2004년 2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는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조치’가 합의되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 함정들이 불법적으로 우리 해역을 침범하였으며, 급기야는 우리 함정에 총격을 가함으로써 군사적 충돌을 야기 하였다.
2) 관련 경과
1999년 6월 15일 오전 북한 측 경비정과 어뢰정 4척이 꽃게잡이 어선 20척과 함께 NLL 남쪽 2㎞ 해역까지 내려왔다. 북한 경비정은 이에 앞서 1999년 6월 6일부터 매일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몇 시간씩 우리 영해에 머물면서 반응을 살피고 돌아가고 있었다. 6월 15일 우리 해군은 참수리급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하여 해군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방송 후 두 차례에 걸쳐 선체를 이용한 밀어내기 경고를 실행하였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는 기관포로 공격을 가해 왔으며, 북한 어뢰정도 공격에 가담하였다. 결국 등산곶 684호는 우리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포항함’의 반격으로 반파되어 퇴각하였다. 이날 교전에서 우리 해군장병 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북한은 함정 1척이 침몰하고 5척이 대파되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당시 남북 간에는 민간차원에서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고 김대중 정부의 남북경협 활성화조치에 따라 교역을 중심으로 점차 활기를 띠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당국 간에는 1998년 이후 1년여 만에 6월 3일부터 남북차관급당국회담이 베이징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제1차 연평해전’이 발생한 직후인 6월 21일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 한명을 억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 차관급당국회담은 7월 1일 2차 회담을 가졌으나 서해교전과 관련한 공방으로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북한은 1999년 9월 2일 인민군 총참모부를 내세워 서해 북방한계선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그들 임의대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하고 나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우리 측은 국회에서 대북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동시에, 대화를 통해 무력 충돌을 방지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제2차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2002년 6월 29일에 연평도 근해에서 발생했다. 제2차 연평해전은 북한 함정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발생하였다. 양측 함정은 함포와 기관포를 주고받는 격전을 벌였으며, 우리 해군은 함장 윤영하 소령 등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였다. 북측도 약 3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로 퇴각하였다.
제2차 연평해전은 2002년 4월 남측 특사의 방북을 통해 남북관계 복원에 합의한 직후에 발생하여 충격을 주었다. 북한의 일방적인 기습 공격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은데 대해 우리 여론도 매우 악화되었다. 북한은 즉각 이 사건이 계획적이거나 고의성을 띤 것이 아니라 현지 부대원들의 우발적 사고였다고 하면서,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긴급 통지문을 우리 측에 보내왔다. 또한 북한은 제2차 연평해전 이후 그동안 머뭇거리던 자세를 벗어나 남북관계를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제2차 연평해전 이후 우리 해군은 기존의 교전규칙인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을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바꾸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동안 해군 2함대 사령관 주관으로 열렸던 제2차 연평해전 추모식을 정부기념행사로 승격시켰으며, 주관 부서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국가보훈처로 변경하였다.
‘대청해전’은 2009년 11월 10일 발생했다. 이날 북한의 경비정 등산곶 383호가 대청도 인근 서해 NLL을 침범하여 남하하자 우리 해군은 5차례 경고방송을 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자 경고사격을 가하였다. 이에 대응해 북한 등산곶 383호가 우리 해군 함정에 조준사격을 가해 옴에 따라 직접적인 교전으로 이어져, 북한 등산곶 383호는 반파되어 북상하였으며 인명피해도 입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우리 해군은 함선 외벽에 탄흔 피해를 입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은 11월 14일 남북장성급회담 북측단장 명의로 우리 측에 통지문을 보내 북측이 선포한 해상군사분계선을 위한 군사적 조치를 호언했으며, 12월 21일에는 해군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서해 군사분계선 수역을 평시 해상사격 구역으로 선포하고 이 구역에서 모든 어선들과 함선은 피해가 없도록 안전대책을 강구하라고 위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