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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장화와 대내 경제정책
가. 시장화 현상
북한 경제에서 시장화 현상은 1980년대 중후반 계획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한 상황에서 본격화되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도 공급 부족 현상으로 자재 공급과 배급 제도가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자, 2003년 북한 당국은 10일장 형태의 농민시장을 상설시장화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농민시장은 계획경제 하에 운영되던 공식시장이었으나, 1990년대 중반 경제난 이후 암시장 형태인 ‘야시장’, ‘장마당’ 등으로 발전하여 당시 불법 거래 상품이었던 쌀·옥수수 등 식량과 공산품 등을 매매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북한 주민들은 처음 배급제가 중단되었을 당시 생존을 위한 식량획득 목적으로 ‘단순 거래자’로서 농민시장에 등장했지만, 여러 차례의 교환활동을 통해 부의 축적을 경험하며 화폐 자본을 축적해 나갔고, 일부는 상업자본을 축적하여 ‘돈주’로도 성장했다. 시장에는 공장·기업소 자산의 전유, 약탈·탈취 등을 통해 유입된 재화, 텃밭·소토지 등에서 경작된 농축산물, 개인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물품, 국제사회의 지원 물자, 중북 간 공식·변경 무역 및 밀수 등을 통해 대규모로 유입된 재화들이 유통되었다.
북한의 시장화 현상은 1990년대 중반 무렵 심각한 식량난과 계획경제 시스템의 붕괴에 직면한 북한당국이 중북 접경지대의 통상구를 개방하고, 국가 지정 무역기관 외에 정부 부처인 성省, 기관, 군부대, 지방의 도인민위원회, 공장·기업소들도 대외무역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해주면서 더욱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북한의 시장은 전국적 규모의 유통 네트워 크가 형성되는 양상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주요 시·도에 대규모 도 매시장과 함께 특화된 시장들이 형성되었으며, 주민들의 장사 형태 도 ‘배낭(등짐) 장사’에서 출발해 점차 지역 간에 부족한 물자를 유통 시켜 이익을 얻는 ‘되거리 장사’, 철도·차량을 이용한 도매 장사인 ‘달 리기 장사’ 및 ‘차판 장사’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2003년 상설시장이 도입된 이후에는 시장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장사하는 ‘매대 장사’가 합법화 되면서 시장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북한은 「사회주의상업법」에서 시장을 ‘사회주의경제관리의 보조 적 공간으로 이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계획경제 하에 운영되는 시장은 생산물 시장뿐이다. 생산요소 시장(자본· 노동·토지시장)은 공식적 운영을 허용하지 않아 부를 축적한 개인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운영 확산되고 있다.
생산물 시장으로서 북한 전역에서 운영되는 시장은 사회주의 물자교류 시장과 종합시장이다. 종합시장은 2022년 기준 약 414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매일 개장하여 통제 품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산품 및 식량 등의 다양한 상품이 거래된다.
시장 운영 과정에서 북한은 시장사용료(장세)를 징수하고 있다. 시장에서 매대를 빌려 공식적으로 장사하려면 시장사용료(장세)를 지불해야 하며 상인 1인이 납부하는 시장사용료(장세)는 품목별, 지역별로 다르다.
시장의 과잉확산을 막기 위해 북한은 김정일 통치시기인 2005~2009년까지 시장억제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2009년 화폐개혁 실패 이후 북한의 시장은 더욱 확산되어, 김정은 정권은 제도권 안에서 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정책적 조치들을 취하였다. 이후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국영상업 복원 등의 사회주의 경제관리원칙을 철저히 준수할 데 대해 강조하며 계획경제 하에서 시장을 관리·운영하기 위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나. 시장 관련 대내 경제정책
1990년대 시장화 현상은 ‘아래로부터의 시장화’ 현상으로서 북한경제의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라는 큰 모순을 야기했다. 북한은 2002년 7월 1일 ‘새로운 경제관리개선조치’ 시행을 통해 당국의 통제 밖에서 자생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시장을 규제하고, 계획경제를 복원하려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국영기업소, 협동농장 등 각 경제 단위는 분권적 자율 경영 권한을 일부 부여받았으나, 시장을 대체할 주민 공급물자(식량 및 생필품) 조달을 보장할 수 없었다. 7.1 조치의 실패로 북한 당국은 2003년 3월 기존의 농민시장을 상설시장화 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와 함께 기업 간 원자재·생산재 교류가 가능한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과 수입물자교류시장이 개설했다.
그러나 시장 기능을 부분 제도화한 상설시장화 조치 이후 계획경 제와 비공식경제 간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주 민들은 종합시장 바깥에서의 장사활동(메뚜기 장사, 주택가·골목장사, 방문 판매) 및 개인 경제 활동을 확대해나갔다. 특히 다양한 서 비스 업종(노래방·PC방, 숙박업, 운송, 목욕탕, 식당, 개인 수리업, 자전거·오토바이 배달 등) 및 자영업이 나타났다. 공장·기업소들이 기존 업종과 다른 생산활동을 통해 국가기업이득금을 납부하거나, ‘돈주’의 투자를 유도해 ‘돈주’로부터 수익금의 일정 몫을 받아 국 가기업이득금을 내는 현상도 나타났다. 상설시장 도입 조치는 당국 의 의도와는 달리, 공식경제와 비공식경제가 상호 공생하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구축시켰다. 이에 위기의식을 갖게 된 북한 당국은 2005년 하반기부터 점진적으로 시장을 통제해 나갔다. 시장 억제 정책은 김정일이 ‘시장은 비사회주의의 서식장이요, 자본주의의 본 거지’라고 언급한 이후 본격화되어, 2009년 11월 30일 화폐개혁 시행 및 종합시장 철폐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재정 수입 증대와 시장규제, 중앙집중적 계획경제로의 복귀를 의도했던 북한의 화폐개혁은 2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미 북한 주민들의 가계 경제가 시장활동을 통해 대부분 유지되고 있고, 계획경제 공간도 시장에 의존해 작동되고 있었으며, 국가의 재정 수입조차 시장의 토대 위에서 상당 부분 달성되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화폐개혁의 실패는 북한 경제가 이제는 결코 계획경제 체제로 회귀할 수 없고, 시장이 북한 경제 내에 구조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은 화폐개혁의 실패를 교훈으로 시장을 활용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체제 내구력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특히 ‘돈주’ 및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화폐 자산을 활용해 김정은 정권의 단기 업적을 가시화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영기업소와 국영상점과 같은 공식경제 부문들이 돈주의 투자를 받아 직접 시장지향적 경영활동을 행하고, 이 과정에 이익을 창출하여 국가기업이득금을 납부하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때때로 돈주들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가는 것을 견제하고 있지만, 공식경제 부문의 경제활동이 돈주와의 협력관계 속에서 이 루어지는 현상은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국영 상업망 복원정책에 의해 주민들의 사적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가 다소 강화되고 있다.
둘째, 공장기업소의 부분적인 자율 경영에 따라 기업소지표를 개 발하여 생산하고 생산된 생산품이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당국 차원의 내수시장 견인 조치를 확대되고 있다. 김정은은 의류, 신발, 식품공장 등을 방문하여 국산화를 강조하면서 다양한 소비자 기호를 고려한 상품의 생산 판매를 촉구하였다. 또한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상점을 건립하는 등 주민들의 소비를 국영부문으로 흡수하려는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셋째, ‘새로운 경제관리 조치’를 시행하여 협동농장 경영활동도 시장과 연계되어 농산물 시장 유통을 촉진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은 2012년 6월 28일 이른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라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도입해 국영기업소, 국가기관, 협동농장들의 시장과 연계 된 활동을 일정 부분 지원하고 있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란 “경영권한을 현장에 부여하고”, “노동자·농민의 일 욕심을 돋우는” 조치, 즉 경제 단위에 대폭 자율성을 부여해주고 물질적 인센티브제를 적극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농업 분야에서는 ‘분조관리제 안에서 포전담당책임제(2013년 전면 도입)’, 국영기업 분야에서는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2014.5.30.)’의 시행으로 구체화 되었다. ‘분조관리제 안에서 포전담당책임제’는 협동농장의 하부말단 노동단위인 분조의 규모를 10~15명에서 4~6명으로 축소하고, 토지를 배분하여 경작하게 한 후, 생산물 중 당국이 제공한 농자재 비용 과 국가 몫을 제외한 초과 생산물을 경작 농민들에게 현물로 분배하는 제도이다.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는 공장·기업소에 국가계획 외 ‘기업소 자체 계획’을 허용해 생산량, 생산물의 품질, 가격·임금 및 인력 규 모 결정 등 일부 권한을 부여하고, 초과 생산품의 시장 판매를 허용 한 조치로서 협동농장에서는 ‘농장책임관리제’로 적용되고 있다.
최근 제·개정되는 다수의 북한 경제법을 봤을 때, 2023년 기준 포전담당 책임관리제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주축으로 하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자체는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 매체를 보면 개인주의를 경계하고, ‘집단주의’와 ‘애국’을 강조하는 기사를 계속 내보내고 있어, 주민들의 사상이완을 경계하는 가운데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시장 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통한 사경제활동은 더욱 확산되는 추세이다. 북한이탈주민 조사에 기반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의하면, 계획경제 부문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경제로 비공식 소득을 취득하는 북한 주민의 비중은 68.1% 이상이었다. 또한 김정은 집권 이후 중국 위안화 통용이 약 5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 제한적 대외개방정책과 한계
가. 4대 경제특구
북한은 1990년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로 산업 간 연결 관계의 단절 현상이 야기되자 대외경제 개방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소련으로부터 우호가격으로 제공받아왔던 원유, 코크스, 기초 원자재 등을 이제는 국제시장에서 정상 교역의 무역 관계로 조달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1년 12월 처음으로 함경북도 최북단 항구 도시인 나진·선봉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외국인 투자 관련법 등을 제정하였고 이에 이어 2002년 「신의주특별행정기본법」, 「개성공업지구법」, 「금강산관광지구법」 등을 제정하여 나진·선봉 경제특구와 신의주·개성·금강산경제특구까지 합해 4대 경제특구를 지정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당시 계획한 ‘신의주특별행정구’는 중국의 초대 행정관으로 임명된 화교 사업가 양빈이 중국 당국에 탈세 혐의로 체포되면서 무산되었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는 남한 자본이 단독 투자·개발하는 형태의 특구로 개설되어 가동되었다. 그러나 금강산관광은 북한군의 남한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2008년 8월에 중단되었고, 개성공단은 북한의 지속적인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로 2016년 2월 전면 중단되었다.
나. 대중국 경제협력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남한의 5.24 조치에 의해 남북경협이 위축되자, 대중국 개방을 더욱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고 외화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대외 경제정책을 변화시켰다. 2010년 나선시를 특별시로 격상시키고, 2011년 황금평·위화도를 새로운 경제특구로 지정했으며, 나선·황금평·위화도를 중국과 함께 공동개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2011년 북한 장성택과 중국 상무부 장관이 참여하는 공동 착공식을 개최하고 ‘조·중 라선경제 무역지대와 황금평경제지대 공동개발 총계획 요강’이라는 공동개발 청사진을 발표했었다. 또한 중국의 동북 3성 지역과 북한 북부 접경지역 간 교량, 도로, 철도 등 인프라를 연결 및 증축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과 계속되는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인해 양 지역 경제특구 공동개발은 답보 상태이다. 우선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의 경우 형식상 관 리위원회 건물만 건축된 후 사실상 수년째 후속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선 경제특구의 경우 중국이 사용하는 나진항 1호 부두 개보수 및 창고 건설, 북한 원정리 세관과 나진항 간 도로 확장(2차선→4차 선), 길림성-나선시 간 고효율 농업 시범구 협력 등 중북간 합의된 일부 소규모 사업만 추진되었다. 중국의 나선 경제특구 내 자본 투 자는 주로 숙박업·물류업 등 서비스 업종 위주이고, 인프라 및 제조 업 부문 투자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북한 발표에 따 르면 2013년 5월까지 나선 경제특구의 외자 유치는 약 4.1억 유로 (약 4.8억 달러)에 불과하다.
중국은 중북 경제특구 공동개발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했지만, 2011년 중북 간 합의되었던 통상구 연결 다리와 도로의 개보수 및 신설은 자국의 필요에 따라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다. 즉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신압록강대교를 건설(2024년 12월 현재 미개통)하고 신두만강대교를 개통(2016년)하는 한편, 중 국 집안-북한 만포 간 다리 및 철로를 신축(2019년)했으며, 중국 도 문-북한 남양 간 다리를 새롭게 건설했다. 대북제재의 강화와 상관 없이, 중국의 필요에 의한 소규모 접경지대 연결 인프라 사업은 지속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코로나19로 북한 내 해외 관광객 유입이 차단되기 전까지 다리를 이용한 중국인의 대북 자가용 관광, 1일 혹은 반나절 관광이 추진되었으나 현재는 중단된 상황이다.
다. 경제개발구 신설
김정은 정권은 나선, 황금평·위화도, 금강산, 개성공업지구 등 4대 중앙 특구 외에 지방에도 경제개발구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 2013년 5월 29일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2023년 현재 기준으로 중앙급 10개와 지방급 19개 경제개발구 등 총 29개의 경제개발구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그림] 북한의 경제특구 및 경제개발구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경제개발구 정책은 선포된 이후 어느 한 곳 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경제개발구 신설을 선포 한 이후 4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다수의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했 기 때문이다. 정치체제 유지를 우선으로 한 핵·미사일 개발 지속, 이 를 위한 불균등한 예산 배분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인한 외 자유치 환경 제약, 북한식 사회주의 강국 주장과 시장 개혁 지체, 전 력 부족과 열악한 인프라, 낙후된 물류 체계 등의 내수경제 위기가 겹쳐 경제개발구 신설 추진은 요원한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이 대외개방과 개혁을 동시에 시행하는 종합 계획을 제시하고 비핵화를 적극적으로 진행할 경우에만 김정은 정권의 경제개발구 구상은 본격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2025.5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