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영역
북한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주체’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주체사상 형성 초기에는 “제국주의 사상과 문화의 침투”에 대한 민족주의적 대응 논리로서 대외적 주체의식을 확보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치적으로는 소련에서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운동 이후 노동당 내 1인 지배체제 비판의 유입을 차단하면서 1인 지배체제를 옹호하는데 주력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중・소간 이념 분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독자적 생존을 위해 중・소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려는 외교 전략적 대응이 주체사상으로 표출되었다.
북한은 1955년 ‘사상에서의 주체’를 시작으로, 1956년 ‘경제에서의 자립’, 1957년 ‘정치(내정)에서의 자주’, 1962년 ‘국방에서의 자위’, 1966년 ‘정치(외교)에서의 자주’를 표명하면서 주체사상의 이론적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김일성은 1965년 연설에서 “우리 당의 주체사상은 우리의 혁명과 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가장 정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이며 공화국 정부의 모든 정책과 활동의 확고부동한 지침”이라고 밝혔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주체사상은 ‘당의 유일한 이념’이자 ‘혁명과 건설의 지도적 지침’으로 표방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 제5차 당대회에서 주체사상을 당의 공식이념으로 채택하였고 1972년에 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주체사상을 공식 통치이데올로기로 규정하였다. 이후 주체사상은 1980년 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의 노동당 규약 개정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신하여 유일한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80년대에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이후 주체사상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하면서 주체사상의 이론적 체계화를 모색하였다. 김정일은 1982년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 를 발간하여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였다. 1986년 발간한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를 통해서는 ‘혁명적 수령관’1)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2)을 제시하며 이론체계를 마련하였다.
1) 혁명적 수령관 : 김일성 1인 지배체제 확립을 목표로 전개된 이론으로서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적 신념으로 간직해야 하며 수령을 옹호보위하고 수령의 혁명사상과 영도를 무조건 받들고 철저히 관철해 나가는 자세와 입장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구성
2)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 사회정치적 존재인 개개인이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결속하면 영생하는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이념적 구호에 치중한 주체사상의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이 시기 이후 실제로 주체사상을 언급하는 빈도도 낮아졌다. 심각한 경제난이 체제 위기로 전환되는 국면 속에서 주체사상은 지도사상으로 위치를 갖고 있기는 했으나, 이후 북한은 ‘붉은기사상’, ‘강성대국론’, ‘선군정치론’ 등의 구호들을 내세워 체제 안정화 및 생존 논리로 활용하였다.
현재에도 여전히 주체사상은 북한의 핵심 통치이념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2021년 1월 개정된 당규약 서문에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최고강령으로 성문화하면서, 이것이 주체사상에 기초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2024.8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