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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군사·경제 병진 노선

국방경제 병진노선

북한이 주장하는 국방경제 병진노선은 국방력 강화와 경제건설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부문보다 군사부문에 자원을 우선적으로 투입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이 노선의 채택 이후 군수공업에 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분함에 따라 차츰 민생경제는 만성적인 침체국면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배경

국방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사회주의 진영 내 이념분쟁 및 중소분쟁이었다. 특히 1962년 10월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소련의 태도에 북한은 크게 실망하였다. 소련은 미국과 타협하여 사회주의 약소국 쿠바의 안보문제를 도외시 했을 뿐 아니라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 북한의 군사적 지원 요청을 거절하였다. 또한 쿠바 사태 해결 이후에도 1965년 남한이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매듭지음으로써 한미일 3각 안보체제를 갖추고, 베트남전쟁의 발발 등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은 군사력 경쟁에서 끊임없이 우위에 서고자 무력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북한은 1960년대 중소분쟁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의 고조 등 국제 정세를 반영한 사회주의 건설 노선의 하나로 군사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였다.

주요내용

국방경제 병진노선은 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 4기 제5차 전원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전체 당원과 근로자들은 한 손에 무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 낫과 마치를 들고 조국을 보위하며 동시에 사 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군사경제 병진 노선은 1966년 10월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전면적으로 제기되었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채택되었다. 국방경제 병진노선은 사회주의 경제건설 시기에 국방력 강화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군사경 제 병진노선은 많은 물질적, 인적 자원을 국방으로 투입하게 했다. 이로 인해 북한의 군사비는 1960년 내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1960년 재정의 3.1%에 불과했던 국방비는 북한 전체 예산의 30% 이상의 비율로 확대되게 된다. 북한은 국방경제 병진노선을 제시하면서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인민의 무장화, 전군의 현대화 등 4대 군사노선도 채택하였다. 나아가 1967년부터는 적극방어 개념에 입각하여 북한의 군부 강경파들이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남북 간 긴장관계를 자신들의 당권 장악에 이용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모험주의 노선을 걸었다. 그 결과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미국 푸에블로호 나포사건과 1969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미 정찰기 EC-121기 격추사건 까지 일으키면서 군사적 대립과 충돌이 확산되는 결과도 수 반했다.

평가

1960년대 중반부터 추진된 국방경제 병진노선은 북한 경제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산업을 군산복합형으로 변형시켰다는 점이다. 즉 중화학공업이 기계화학공업을 중심으로 군수산업에 계열화됨으로써 군수산업과 민수산업 간의 구별이 어렵게 되었다. 군수산업은 민수산업을 관리하는 제1경제위원회와 별도로 구성된 제2경제위원회에서 관리됨으로써 북한 경제구조는 민간경제와 군수경제로 이원화되었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군수산업으로 투자재원이 집중되어 민수산업의 성장이 제약되고 소비생활 부문의 발전이 저해 되었다는 점이다. 이 노선이 채택된 이후 북한 총예산에서 군사비 비중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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