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주메뉴 바로가기

통일부:북한정보포털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제목
고난의 행군

고난의 행군

고난의 행군은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나라의 경제사정이 극히 어려워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김정일이 내놓은 당적 구호로서, 1996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제시되었다.

주요내용

고난의 행군이라는 용어는 1938년 말~1939년 초,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빨치산이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100여 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고난의 행군은 공식적으로 세 번째 고난의 행군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첫 번째 고난의 행군은 앞서 말한 김일성의 빨치산 시절인 1938년 12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중국 몽강현 남패자로부터 압록강 연안 국경일대로 행군한 것이며 두 번째는 1956년 8월 종파사건 전후부터 천리마운동이 전개되는 시기까지다. 1996년 신년사를 통해 제시된 세 번째 고난의 행군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백두밀림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야 한다는 언술에서 나온 것으로 1990년대 계속되는 경제난과 기아를 극복하고 사회적 이탈을 막으며, 주민들의 희생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북한당국은 1996년 공동사설 발표 이후 고난의 행군정신을 강조하면서 군인건설자들을 경제건설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에 의해 안변청년발전소와 원산-금강산 철도등의 건설 실적을 남겼으며, 그 외에도 체육, 과학, 문예 등 사회 전 부문에 걸쳐 고난의 행군정신을 강조하며 사회적 동원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문예부문에서는 서정시 끝나지 않는 행군길, 가요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청춘시절 등과 영화들이 제작, 발표되어 고난의 행군정신을 전 분야에 걸쳐 보급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고난의 행군은 북한 사회의 변화를 진단하는 새로운 기준점이 되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전후하여 많은 변화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대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산업이 붕괴되고 배급이 중단되었으며, 북한주민들이 장마당을 활성화시키면서 스스로의 생존과 생활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집단주의 의식과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사회주의적 가치관들이 흔들리면서 다양한 비사회주의적 행위가 확대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를 상징하는 것은 배급의 중단, 배고픔과 굶주림, 질병과 죽음의 그림자이다.

평가

고난의 행군이란 용어가 북한당국에게 사상의지를 강조하는 정치적 구호였다면, 북한주민들에게 고난의 행군은 국가의 배급중단으로 인하여 자체적으로 생계문제를 해결해야만 했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던 절박한 생존의 시기를 의미한다. 이후 고난의 행군은 당시의 절박했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어가 되었다.

연관검색어
강계정신 , 배급제 , 장마당
담당부서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