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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통일연구원, 「2026 한반도 정세 전망」 발간
1. 통일연구원(원장직무대행 현승수)은 2025년 12월 「2026 한반도 정세 전망」을 발간하였다. 이번 보고서는 남북, 북미, 한미관계의 2025년 정세 평가와 2026년 전망, 북한 내부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2. 「2026년 한반도 정세 전망」의 주요 구성과 작성자는 다음과 같다.
가. 한반도 정세 ① 남북관계와 북한의 한반도 정책: 박영자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
나. 한반도 정세 ② 북미관계: 조한범 통일정책연구실 석좌연구위원
다. 한반도 정세 ③ 미국 대외전략과 한미관계 전망: 김주리 통일정책연구실 연구위원
라. 북한 정세 ① 북한 정치 전망: 김정은 사상·노선·정책 전면 추진: 오경섭 북한연구실 선임연구위원
마. 북한 정세 ②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대외전략: 홍민 북한연구실 선임연구위원
바. 북한 정세 ③ 2025년 북한 경제 평가와 2026년 전망: 정은이 북한연구실 연구위원
사. 북한 정세 ④ 북한의 대외․대남정책: 2025년 평가와 2026년 전망: 장철운 북한연구실 연구위원
아. 남북 인도협력 - 남북인권대화와 이산가족: 이규창 인권연구실장
3. 통일연구원은 이번 「2026 한반도 정세 전망」발간을 통해 한반도 및 국제 정세에 대한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는 대북‧통일정책 수립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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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KDI 북한경제리뷰 2025년 12월
이번 12월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북·중·러 간 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그 변화가 동북아 정세에 어떠한 구조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러시아가 ‘서방’과 ‘세계 다수’로 구분되는 인식 틀 속에서 대외전략의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북러 관계의 성격 변화가 한반도 정세에 갖는 함의를 분석한다. 동시에 북중러 접경지역에서 진행 중인 교량 건설과 철도·항만 인프라 정비 등 가시적인 물류 환경의 변화를 통해, 극동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공간이 형성되는 흐름을 조명한다. 이러한 변화는 북러 협력의 심화가 역내 안보 환경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편, 북극항로와 유라시아 복합운송망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호는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위치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외교·경제적 대응 방향을 모색한다.
The December issue examines the deepening cooperation among North Korea, China, and Russia amid the postRussiaUkraine war reconfiguration of the international order, and its structural implications for Northeast Asia. It analyzes Russia’s shift in external strategy based on a worldview that distinguishes between the “West” and the “World Majority,” and considers how this reorientation is reflected in changes in North KoreaRussia relations and their implications for the Korean Peninsula. The issue also reviews recent developments in border areas, focusing on concrete changes in logistics infrastructure―including new bridge construction and the modernization of railways and ports―that point to the emergence of a restructured economic space in the Russian Far East. These developments highlight a dual reality in which closer North KoreaRussia cooperation adds constraints to the regional security environment while also generating geoeconomic opportunities linked to the Arctic shipping route and Eurasian multimodal transport networks. Against this backdrop, the issue discusses diplomatic and economic policy directions for Korea as it seeks to strategically position itself between continental and maritime domains.
동향과 분석
북중러 협력과 러시아의 대외전략 | 제성훈
지정학적 이슈로 인한 북중러 접경지역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 이성우
북중러 밀착과 유라시아 복합운송 대전환: 한국의 경제 안보를 위한 북극항로와 남북러 철도 협력 연계 전략 | 박정준
러시아의 북극항로 개발정책과 한국의 참여 전략 | 변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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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두 국가’ 논란과 동서독 기본조약
두 국가론과 관련된 논쟁에는 헌법 정신, 민족과 국가의 관계, 북한 인식 등에 대한 근본적 견해 차이는 물론 현 국제정세와 북한 체제의 미래에 대한 상이한 판단, 안보 위협 해소 방안에 대한 견해 차이 등 매우 복잡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북 정책에 대한 입장이 진보-보수 정치 지형을 가르는 현재 우리의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이러한 논란에 대해 단순 명확한 하나의 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상반되는 두 입장들 모두가 동서독 기본조약의 경우를 각각의 방식으로 차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독은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민족 통일의 당위성과 헌법의 통일 명령을 존중하면서도 동독과의 평화공존을 위해 불가피한 두 국가 현실을 받아들였다. 두 국가론 논쟁이나 남북기본협정 체결 추진과 관련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불가피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통일 명령에 관한 우리의 헌법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남북이 별개의 두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헌법 정신도 두 국가 현실도 결코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부터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과정은 이러한 상반되는 불가피성을 돌파해낸 당대 독일인들의 지혜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는 이후 동서독의 장기적인 평화공존을 위한 초석이 되었다. 두 국가론을 둘러싼 소모적이고 정파적인 내부 논란보다는 모순적 분단 현실에 대한 공동의 인식 아래 남북의 평화공존을 위한 실용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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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북한 8차 당대회 이후 당중앙위원회 지도기구 인사 변화
북한이 2021년 노동당 8차 당대회를 개최한 지 5년이 지나 2026년 9차 당대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8차 당대회에서 경제와 군사,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을 발표한 이후 5년간 이를 추진해왔다. 이러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과 국가기구의 인적 구성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수반되었다. 김정은이 사회주의 정상국가화를 표방하고 당-국가 체제를 강화하면서 당적 지도를 강화해옴에 따라 당의 역할과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지도기구들의 인적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을 시도했다. 북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비서국, 당중앙군사위원회 등 주요 지도기구에서 8차 당대회에서 제시했던 정책의 달성과 우선순위에 따라 인사변동이 나타났다. 또한 당-국가체제를 강화하는 시도는 군부에 대한 당의 지도적 지위를 강화하고 군부의 정치적 지위를 제한하는 방향의 인사로 변화했다. 또한, 7차 당대회부터 지속해온 세대교체는 8차 당대회에서 지속적으로 시행해왔고 1960년대 출생한 김정은에 충성하는 실무형 전문가로 채워지며 새로운 권력 구도가 조성되었다. 이전 정권에서도 반복해온 해임과 임명을 반복하는 회전문식 인사는 8차 당대회 이후로도 정치적 통제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활용되었다. 9차 당대회 이후에 발표하는 당중앙위원회 지도기구의 인적 구성은 8차 당대회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체계를 지속해서 강조하며 당에 기반한 인사가 지속하고 경제ㆍ산업ㆍ지방 분야의 실무형 전문가들이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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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승절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와 시사점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북중관계가 급속히 회복되며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 리창 총리의 평양 방문 등은 북중 간 정치ㆍ경제적 복원 신호로 작용하였고, 이에 따라 한미일 공조와 북중러 협력이 병행되는 진영대립 구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안정과 영향력 유지를 핵심 목표로 하며,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체제 유지와 대미 협상력 확보를 중시한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면서도 핵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명목상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외부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으며 향후 △미국의 대중ㆍ대북 정책 △북한의 전략적 입지 △한미일 공조 등 여러 변수에 의해 조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3가지 변수를 종합 검토할 때, 중국의 대북 접근과 유화정책은 지속ㆍ강화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미중 강대국과의 전략 소통을 강화하여 ‘비핵화 원칙 및 절차’ 등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를 도출해 낼 필요가 있다. 동시에 남북관계 복원과 ARFㆍ아세안+3 등 다자협의체를 활용한 대화 여건 조성을 병행함으로써, 북중관계 회복 국면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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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Global NK 논평] ’우리의 조국’에서 ‘나의 조국’으로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돌아온 ‘조국’ 노래
매년 신년을 기념해 열리는 북한의 신년경축공연은 북한 당국이 창작한 신곡을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공연에서 발표하는 신곡은 북한의 국제 음악 트렌드 수용 양상을 가늠하는 지표이자,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책적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2025년 신년경축공연에서도 새로운 창작곡들이 공개되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곡은 <길이 사랑하리>, <우리는 조선사람>, <강대한 어머니 내 조국>, <조국과 나의 운명> 등 네 곡이다.
북한에서 새로운 노래는 공연 무대에 그치지 않는다. 창작곡은 로동신문 등 주요 매체에 악보 형태로 게재되고, 조선중앙방송 화면음악으로 반복 송출된다. 이후 주요 악단의 공연 레퍼토리로 채택되고, 독보회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반복 학습된다. 북한에서 새 노래의 등장은 북한 사회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확산시키기 위한 선전·선동 과정의 일환인 것이다.
올해 발표된 신곡들의 공통점은 바로 ‘조국’이 핵심 정서와 주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조국을 전면에 내세운 창작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국’을 표제어로 사용하는 집중적 창작은 2013년과 2024년 단 두 차례만 확인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3년에는 <내 조국강산에 넘치는 노래>, <희망 넘친 나의 조국아>, <조국 찬가> 등 세 곡이 잇따라 발표되며 ‘조국’이라는 단어가 이례적으로 강조되었고, 11년 뒤인 2024~2025년 다시 ‘조국’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 반복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에서 ‘국가’는 특정 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실현하는 권력기관이자, 주민 전체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관리하는 제도적 장치로 정의됨에 따라, 사회 운영을 책임지는 실체적 권력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하다. 반면 ‘조국’은 사전적으로 ‘자기가 나서 자란 나라’, ‘국적이 속해있는 나라’는 일반적 의미와 함께 “수령이 마련해준 인민의 나라”라는 규정을 포함한다. [1] 조국이라는 말이 제도적 범주가 아니라 수령 주도의 정치적 기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북한식 개념 정의의 핵심이다.
이처럼 ‘국가’가 제도와 권력의 언어라면, ‘조국’은 정치적 기원을 내포하면서도 보다 상징적이고 정서적 호소력을 띠는 표현으로 기능한다. 당국이 다시 ‘조국’을 노래의 표제어로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 개념이 갖는 상징성을 새롭게 활용하겠다는 의도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도적 언어가 아니라 상징적이자 정서적인 언어로 접근하는 방식이 선전 전략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3년 ‘집단’의 조국: 지도자 중심의 충성 동원
2013년 창작된 ‘조국’ 표제곡들은 표면적으로는 조국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충성과 지도자 중심의 집단 결속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국’이라는 표제어는 포장일 뿐, 가사 속에서 조국은 지도자의 존재와 업적을 담는 상징적 바탕으로 재구성된다.
<내 조국 강산에 넘치는 노래>노래에서 조국이라는 단어는 1절 가사 ‘희망찬 내 나라 조국강산에 울려퍼지네 원수님노래’라는 구절에서 등장하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조국은 지리적 공간도, 민족 공동체도 아닌 ‘지도자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장소’로 정의된다. 지도자의 사상이 확산되는 공간이 곧 조국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김정은원수님 노래’와 ‘노래 노래 노래’ 같은 짧고 반복적인 구절은 집단 합창을 쉽게 만들고 감정을 고조시키며, 결국 집단주의적 충성을 강제하는 음악적 장치로 작동한다.
희망찬 내 나라 조국강산에 울려퍼지네 원수님노래 인민위해 바치시는 사랑 고마워 심장으로 부르는 흠모의 노래 노래 노래 흠모의 노래 강산에 넘치는 노래 아 우리의 김정은원수님 노래
<조국찬가>는 조국을 보다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첫걸음마 떼여준 정든 고향’과 같은 표현은 조국을 감성적 안식처로 제시하며 개인적 추억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곡 전체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감성적 묘사가 아니라 ‘행복은 넘쳐라 인민의 조국’, ‘누구나 소중한 그 품은 조국’과 같은 표현이다. 이 문장들은 조국을 모성적 존재로 이상화하는 동시에 국가가 감정과 행복의 기준을 설정하고 규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림같이 황홀한 땅과 바다’나 ‘금은보화 가득한 전설의 나라’와 같은 과장된 이미지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향을 통해 체제의 영속성과 우월성을 강조한다. 참매, [2] 목란꽃 등 국가 상징의 반복 역시 주민에게 자긍심과 충성의 정서를 주입하기 위한 수사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첫걸음마 떼여준 정든 고향 집뜨락 조국이여라 누구나 소중한 그 품은 조국 그림같이 황홀하여 눈이 부신 땅과 바다 금은보화 가득한 전설의 나라 행복은 넘쳐라 인민의 조국 구름우엔 참매 날고 목란꽃 핀 이 강산 슬기롭고 아름다운 조선의 모습 부러움 없어라 아침의 나라
세 곡 중 <희망넘친 나의 조국아>는 조국을 가장 노골적으로 지도자와 등치시킨다. 후렴구는 ‘희망 넘치는 조국은 원수님 그 품’이라는 표현을 통해 조국의 정체성을 ‘지도자의 품’으로 환원한다. 1절 ‘눈부신 아침 즐겁게 맞네’, 2절 ‘비 내려도 폭풍 세차도’ 같은 가사는 현실의 고난과 제재로 인한 고립을 은유적 시련으로 치환하면서 그 극복의 길을 지도자에 대한 충성으로 제시한다. ‘우린 누구나’, ‘우리 사는 곳’과 같은 1인칭 복수 주체는 개인감정을 집단 감정으로 재편하고 가사 말미의 ‘나의 조국아’는 개인적 호명처럼 보이지만, 이는 집단 정서를 대변하는 수사적 장치일 뿐이다.
우린 누구나 기쁨에 넘쳐 눈부신 아침 즐겁게 맞네 바라는 꿈이 눈앞에 꽃펴 래일도 즐겁게 맞네 밝고 밝아라 우리 사는 곳 원수님 그 품이여 인민의 희망 만복의 희망 넘치는 나의 조국아
2013년에 창작된 ‘조국’ 관련 세 곡은 모두 표제에서는 조국을 말하지만, 가사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실명이나 칭호와 함께 성과와 업적의 칭송이 중심이 되며, 조국은 지도자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공간으로 종속된다. 조국을 이상향으로 묘사하는 노래조차 그 이상향을 지키고 실현하는 주체로서 지도자를 암묵적으로 배치한다. 이 시기의 ‘조국’은 어디까지나 ‘집단의 조국’이며, 그 집단은 지도자 중심으로 결속되는 집단으로 볼 수 있다. 2013년의 조국 표제곡들은 모두 미래의 밝음과 희망을 내세우면서도 그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주체로 지도자를 세우는 집단적 충성 동원 노래로 기능한다.
2024년 ‘개인’의 조국: 감정의 내면화 전략
2024년에 공개된 조국 표제곡들은 조국을 집단의 구호가 아닌 개인의 감정 속에 위치시키려는 방향으로 선전 전략을 전면 전환했다. 이 곡들은 모두 1인칭 화자의 내면 독백을 중심 서사로 삼아 조국을 기억, 추억, 삶의 의미와 결부된 친밀한 대상으로 구성한다. 특히 <조국에 대한 노래>는 ‘노래하려니’라는 자발적 고백의 언어로 시작하여 조국을 절대적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여러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정서적 공간으로 재정의한다. ‘무엇부터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라는 표현을 통해 조국에 대한 진정성을 감정의 포화상태로 강조하고 있다. 가사 속 조국은 ‘지도자’가 아닌 기억이며 제도적 ‘국가’가 아니라 회고의 대상이다. 후렴에서 반복되는 ‘사랑하노라’를 통해 1인칭 시점에서 사랑의 감정을 조국이라는 대상에 투영시키고 있으며, ‘그대 없인 한순간도 못살아’라는 표현에서 조국을 ‘그대’로 이념적 대상을 인격화시킴으로써 추상적 존재가 아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감성적 존재로 전환시키게 된다.
내 조국에 대하여 노래하려니 하많은 모습과 추억이 떠올라 무엇부터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 너무나 정답고 소중한 모든 것을 사랑하노라 나의 조국을 그대 없인 한순간도 못살아 노래하노라 이 세상 제일 아름답고 위대한 조국을
<조국과 나의 운명>은 그 감정적 결속을 더욱 강화한다. ‘넘어야 할 산들’을 언급하며 현실의 난관을 인정하는 도입은 과거처럼 밝은 미래만을 강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있으며, 조국을 개인의 삶과 선택 불가능한 운명으로 결속시킨다. 후렴 ‘가를 수 없는 하나의 운명’은 조국을 운명적 동반자로 인격화하는 동시에 충성을 감정적 필연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곡에서는 조국과 개인의 거리가 가장 극적으로 좁혀지며 개인과 국가의 경계를 감정적으로 융합시키는 전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 많으리 하지만 내 앞날의 운명을 아네 조국과 함께 하는 내 삶이 달리 될 수는 없는 것을 그대가 강해 두렴 모르고 그대가 빛나 나는 행복해 가를수 없는 하나의 운명 그대와 끝까지 함께 하리 조국아
<강대한 어머니 내 조국>은 조국을 ‘어머니’로 호명함으로써 정서적 친밀성을 극대화한다. 조국은 보호하고 보살피는 존재, 안정과 위안을 제공하는 모성적 존재로 재구성된다. 과거처럼 외형적 번영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국이 굳건하고 강대한 이유를 감정적으로 체감시키며, ‘그래서 우리는 강해진다’는 논리를 통해 국가의 강함을 개인의 감정적 확신으로 연결한다. 후반부의 ‘우리 모두 다 함께 앞으로’는 개인 감정에서 출발한 선전이 다시 집단 행동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보여주며 체제의 정당화라는 선전 구조의 재배치를 확인하게 한다.
영광이 있으라 어머니 내 조국 성스런 그대 려정에 시련을 누르고 락원을 떠올린 그 힘은 무궁하여라 굴할줄 모르는 나라는 번영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강해지리니 우리모두 다 함께 앞으로
<우리는 조선사람>은 ‘조국’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지만, 조국의 정체성을 민족, 역사, 기질을 통해 드러낸다. ‘대대손손 굴할 줄 모른다’는 표현은 조국의 불굴성을 민족적 기질로 설명하며, 이러한 기질을 계승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준다. ‘조국’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조국의 상징을 내면화시키는 전략적 선택이며, 조국을 감성적 존재로 느끼게 하는 다른 곡들과 달리 정체성 기반의 내면화를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못가본 길 굴함없이 우리왔네 이 나라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기에 설한풍도 포화속도 피로 헤쳐 승리했고 맨손으로 빈터에도 락원 세웠네 그렇게 강하다 우리는 조선사람 대대손손 굴할줄을 모른다 보여주리라 그 기상 백배해 이 조선이 억년 솟아 강대함을
<길이 사랑하리>는 조국을 ‘그대’로 직접 호명하며 서정적 고백의 형식을 차용한 곡으로, 조국을 사랑의 대상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선전 언어의 감성화가 가장 앞서 있는 사례다. ‘행복만을 준 오직 그대’라는 표현은 개인의 삶에서 느끼는 행복의 원인을 조국으로 귀속시키며 충성을 감정적 관계로 위장한다. 이는 ‘충성은 사랑이다’라는 감정적 프레임으로 귀결되며 기존 선전 방식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형태의 감성화 전략을 보여준다. 또한 조국을 이상적인 유토피아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조국의 현실적 고난을 인정하고, 이를 개인이 함께 견뎌야 한다는 운명 공동체적 서사로 변환한다.
어이하여 그 이름 부를 때면 생각은 깊어지는가 함께 하며 보내온 못잊을 려정 가슴에 떠오르네 세월의 풍파 이기며 우리를 키운 조국아 행복만을 준 오직 그대를 길이 사랑하리
이처럼 2024년 북한의 창작 노래에 등장한 조국은 집단의 구호가 아니라 개인의 마음속에서 관계를 맺는 존재로 재배치되고 있다. 노래들은 조국을 각기 다른 정서적 상징으로 재구성하며 개인의 감정과 경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집단주의적 선전이 효과를 잃어가는 현실 속에서 개인화된 사회 정서를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조국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만드는 감정 기반의 새로운 선전 양식으로 읽을 수 있다.
왜 지금 ‘조국’을 다시 노래하나
김정일 위원장은 2009년 1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을 후계자로 지명한 직후, 이를 알리는 선전 작업의 일환으로 김정은의 첫 우상화 노래인 <발걸음>이 제작 및 보급되며 후계 구도를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3]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에는 권력 승계의 정당성과 안정적 통치를 확보하기 위한 강도 높은 우상화 전략이 불가피했다. 김정은 공식 집권 초기(2012~2015)에 로동신문 1면에 게재된 우상화 노래는 총 4건으로, 이는 김정일 공식 집권기(1998~2009)의 1면 공개 횟수와 동일한 수준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짧은 기간에 집중적 우상화 조치를 필요로 했던 과도기적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4]
2013년 창작된 ‘조국’ 표제곡들 역시 표면상 ‘조국’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도자의 실명과 칭호를 활용해 조국과 지도자를 등치시키는 전략이 중심이었다. 이 시기 ‘조국’은 국가보다 지도자를 더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감성적 매개였으며, 조국을 지키는 실존적 주체를 지도자로 설정했다. 낙관적인 미래를 앞세운 구성은 새로운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주민들의 충성을 노골적으로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12년 등장한 모란봉악단은 이런 전략의 상징적 장치였다. 악단의 콘셉트와 퍼포먼스, 시각적 스타일은 갱신되었으나, 당시 조국 표제곡들 자체는 절과 후렴의 반복, 합창에 적합한 구조 등 전형적인 북한 가요 문법을 유지했다. 새로운 이미지 전략을 뒷받침하는 매체의 변화는 있었지만, 노래의 창작 방식은 집단적 의례에 최적화된 기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장기적 고립과 외부 환경의 급변 속에서 ‘조국’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해야 하는 국면을 맞았다. 결정적 계기는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 [5] 이었다. 고립 속에서 자국의 주체성을 강화시키며 자력갱생으로 체제를 유지해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2019년 신년사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가 공식 등장하면서 ‘국가’를 중심에 둔 통치 담론이 본격화했다. [6]
2020년 국무위원회연주단 창립, 2020년 당 창건 75돌 열병식의 공화국기 게양식, 2021년 8차 당대회의 ‘우리국가제일주의 시대’ 선포 등은 모두 보편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국가 브랜딩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2023년 국가상징법 제정, 김여정 부부장의 ‘대한민국’ 호명, 2024년 화성지구 2단계 준공식에서의 국가(國歌)명 변경 [7] 역시 북한 당국이 스스로를 ‘국가 대 국가’ 질서 속에 재배치하려는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적 재정립 과정은 내부 통제의 고민과 맞물린다. 코로나19 봉쇄 장기화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주민들의 감정적 동요가 커졌고, 북한은 이를 체제 위협 요인으로 인식했다.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이어 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통한 외부문화 유입의 전면 차단은 주민들의 감성 변화와 외부문화 수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 방식의 선전선동이 더 이상 충분히 작동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은 ‘국가’를 추상적으로 강조하는 대신 감성적이면서도 개인이 내면화할 수 있는 상징어로서 ‘조국’을 다시 호출하고 있다. ‘조국’이라는 매개는 집단적 구호에서 개인적 감정으로 옮겨가는 방식의 선전 전략 전환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셈이다.
‘우리의 조국’에서 ‘나의 조국’으로
선전이 효과를 가지려면 무엇보다 주민의 감정적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 더 이상 집단적 구호만으로 충성심을 견인하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선전의 무게중심은 개인의 감정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조국’이라는 상징어가 다시 호출된 것도 이 같은 고민의 결과로 읽힌다. 제도적 언어인 ‘국가’가 지닌 거리감을 감성적 언어인 ‘조국’을 통해 보완하고, 지도자 찬양을 정면으로 강화하는 대신 조국이라는 간접적 매개를 통해 주민의 내면에 스며들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후 발표된 여러 신곡들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었다. 특히 <조국이여 번영하라>의 후렴 ‘나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그대의 번영뿐 사랑하는 조국이여 길이 번영하여라’는 충성이 개인의 소원과 열망의 언어로 번역되었음을 보여준다. 충성의 주체를 ‘우리’에서 ‘나’로 이동시키는 전략은 조국을 감정의 주체로 재배치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주민의 내면적 감정 구조에 직접 호소하려는 선전 방식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2025년 한 해 동안 새롭게 발표된 창작곡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의 실명이나 칭호가 직접적으로 언급된 곡이 단 한 곡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국이라는 간접 매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지도자 개인의 직접적 호명 없이도 충성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도록 설계된 전략적 조정으로 볼 수 있다. 외적으로는 노골적인 개인 숭배 언어를 완화해 국제적 시선을 의식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조국, 세대를 호출함으로써 지도자 중심 체제를 우회적으로 내면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북한 노래에서의 조국은 ‘우리의 조국’에서 ‘나의 조국’으로 재구성되며, 조국 사랑이 결국 지도자 충성으로 귀결되도록 하는 정서기반의 간접적 우상화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 ■
* 이 글은 2025년 북한연구학회 춘계학술회의 발표문 “북한 가요를 통한 ‘조국’의 재구성: 2013년과 2024년에 새로 창작된 노래를 중심으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1]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0). 『조선말사전』,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 2013년 해당 노래가 창작될 당시 북한의 국조는 ‘참매’였으나, 현재 ‘까치’로 변경되었다.
[3] 이기동 (2012). “김정은의 권력승계 과정과 권력구조”, 『북한연구학회보』 16권 2호, pp. 3-4.
[4] 하승희 (2015). “북한 로동신문에 나타난 음악정치 양상: 「로동신문」1면 악보를 중심으로” 『문화정책논총』 29권 2호, p. 238.
[5] 연합뉴스, [하노이 담판 결렬]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성사부터 결렬까지. https://www.yna.co.kr/view/AKR20190228151900504 .(검색일: 2025.12.5.)
[6] 강혜석 (2019). “김정은 시대 통치담론 변화와 ‘국가’의 부상: <김정일애국주의>와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59권 3호, p. 326.
[7] 기존 ‘애국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로 변경되었다.
■ 하승희 _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 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11) | leesj@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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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트럼프의 美 중간 선거, 中 핵 개발 가속화, 日 핵 보유 논의 주시해야
전재성 EAI 신임 원장
새해 국제 정세 전망
지난 80년은 이례적인 평화 시기
정글 같은 약육강식 시대 온다
中·日 갈등, 우·러 전쟁 향방 주목
미국의 불확실성에도 대비하며
권한도 공유하는 관계 만들어야
“중일 관계 악화, 북핵의 기정사실화로 동북아의 안보 질서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미중간 핵무기를 둘러싼 전략 경쟁, 군비 경쟁이 어떻게 될지 주목해야 합니다.”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은 지난 17일 내년 국제 정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곳으로 동북아시아를 꼽았다. 미중 갈등 외에도 지난달부터 대만 문제로 시작된 중일 갈등이 국제사회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원장은 내년에도 주요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칙 외교’가 계속될 지에 있다며 “미국이 중국과 협상을 추구할 경우,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이 약화될까봐 안보 우려를 더 심하게 느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2022년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개관한 EAI의 원장실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후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부·통일부 업무 보고에서 북한 관련 중요한 발언이 나오고, 일본의 ‘핵 무장’론이 제기돼 수차례 카톡을 통해 추가 인터뷰를 했다.
게으른 자유주의, 질서 유지 노력 부족
― 라인홀드 니버 등 고전적 현실주의자들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세계가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고 있다고 보나.
“소련이 망한 후, 1990년대에 ‘역사의 종언’류의 전망이 유행했다. 그러자 자유주의는 국제 질서를 지키기 위한 타협과 거래를 지나치게 지연시켜 왔다. 미국이 사실상 혼자 공공재를 떠안아 왔는데, 이를 계속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럽이 더 분담했어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악용하지 못하도록 제어했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80년은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예외적인 평화 시기였다. 세계 질서는 이제 다시 무질서한 약육강식의 정글로 되돌아가고 있다.”
―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미중 갈등이 냉전만큼 오래갈 것으로 전망하는데.
“나는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한국이 편안한 위치로 간다는 뜻은 아니다. 냉전 시기 미소 관계와 달리, 현재 미중은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매우 높다. ‘미국인의 중국 없이 하루 살아 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중은 치열하게 경쟁하겠지만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대략 10~20년 정도의 경쟁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 이는 푸틴, 시진핑 등 ‘스트롱 맨’들의 수명과도 유사하다."
― 최근 발간된 트럼프 2기 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이 화제인데.
“NSS의 3분의 2는 패권 재조정 전략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보통 강대국 전략에 가깝다. 미국이 핵 패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인도·태평양을 반드시 붙잡겠다는 전략이다. 핵심은 경제안보 전략으로 이를 패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국가 관계를 상업적, 거래적 관계로 하겠다는 뜻도 분명하다. 서반구와 남미 등을 확보해서 ‘우리만 잘되면 된다’는 시각도 담겨 있다."
‘피크 트럼프’ 확산 여부가 관건
― 궁극적으로 한미 관계도 거래에 기반한 동맹으로 가야 하나.
“한국은 반도체, 조선 등에서 미국에 필수불가결한 나라가 됐다. 미국을 도와주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버든(비용 등의 부담) 셰어링’뿐 아니라 ‘권한 셰어링’이 필요하다.”
― 트럼프 이후에도 트럼프류의 정책이 계속될 가능성이 큰데.
“앞으로의 한미관계에 등장하는 비용 문제는 한미가 함께 만들어야 할 미래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투자로 봐야 한다. 한국은 세력권 질서나 강대국 질서의 종속 변수가 아니라, ‘집합 패권’의 핵심 국가가 돼야 한다. 우리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지적 역량, 소프트파워, 제조업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의 조언을 들었을 때 미국도 바람직한 미래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전 원장은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미국에 요구할 수 있는 목록을 만들어서 내년 초 발표하겠다고 했다.
- 올 한 해 전 세계에 ‘트럼프 광풍’이 불었는데, 내년의 국제 정세도 역시 트럼프에 달린 것 아닌가. 당장 내년 미국 중간 선거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트럼프는 지금이 최절정이고, 앞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의미의 ‘피크 트럼프(Peak Trump)’론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 국내 정치를 보면 1932년 이후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선전한 사례는 거의 없다. 트럼프 1기 때도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내줬다. 현재 여론을 보면 이번에도 하원에서 질 가능성이 크다. 하원은 예산권과 입법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국내 정치에서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럴수록 트럼프는 외교에 더 집중해 성과를 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
- 트럼프 때문에 미국의 정치, 경제도 혼란스러워 보이는데.
“미국은 역대 어떤 나라보다 더 강하지만 국민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1990년생 미국인을 보자. 10대에 9·11을 겪었고, 대학 진학이나 취업 시기에 금융 위기를 맞았다. 결혼 이후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었다. 패권국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했다는 인식이 트럼프를 낳은 배경이다. 트럼프는 바로 그 정서를 파고들었기에 지지율이 어떻게 될지 봐야 한다."
중국에 겁먹고 협력 포기할 이유 없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가능성은.
“조만간 휴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우크라이나의 독자적 전쟁 수행 능력은 애초에 제한적이었다. 징집도 원활하지 않고, 수십만 명의 인구가 이탈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든 이어지든, 그의 장기 집권 가능성은 낮아졌다.”
― 휴전이 이뤄질 경우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의 정상 국가 복귀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가 북한과의 관계만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여러 실익이 있을 수 있다. 중러 관계 역시 영향을 받을 것이다.”
―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도 불구, 한러 관계 복원을 모색해야 하나.
“러시아는 북한의 불법 핵 개발과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을 묵인했다. 그리고, 북한군이 전장에서 실전 경험을 쌓게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중 관계는.
“경제적으로는 이미 상호 보완하는 관계에서 경쟁으로 넘어갔다. 그렇다고 협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경쟁하면서도 협력할 수 있는 의제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에서도 상호 협조할 여지가 있다.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지레 겁먹고 중국과의 협력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 최근 대만 문제로 불거진 중일 갈등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기본 원칙은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중일 관계가 평화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이다. 기존 원칙을 흔들 필요가 없다.”
-일본 총리실의 고위 관리가 자국의 핵무장을 주장한 날, 일본의 시사 월간지 ‘문예춘추’ 내년 1월호를 보니 ‘중국에는 (일본의) 핵 보유도 선택지다’라는 제목의 대담이 실려 있었다. 일본도 핵 무장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나.
“일본은 그동안 미일동맹이라는 ‘플랜 A’에 대해 ‘플랜 B’는 필요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필요에 따라 타협하는 트럼프의 대중 전략, 일본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양보 요구 등을 보고, 플랜 B로 핵무기 보유 논의도 엘리트 사이에서 조금씩 논의되고 있다. 중요한 변수는 트럼프 정부의 확장 억제 전략(핵우산) 변화 가능성이다. 유일하게 핵 공격을 받았던 일본 국민의 여론 움직임도 중요하다.”
- 중국이 일본의 핵 무장론에 강하게 반발하는데.
“나는 일본보다 중국이 더 우려된다. 트럼프 정부 안보 전략의 불확실성과 함께 더욱 중요한 변수는 중국의 핵무기 개발 가속화다. 중국은 2035년까지 핵무기를 미국이 배치한 1550개까지 끌어올리고, 제1도련선을 우회할 수 있는 J3세대 SSBN(핵잠수함)으로 중국의 공격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전략이다.”
북한, 남북대화 응할 가능성 크지 않아
- 앞으로는 냉전시대처럼 미중 핵 경쟁이 우려된다는 건가.
“향후 10년 내 중국의 핵 능력 증가로 미중 간 상호확증파괴가 달성되면, 중국은 미국을 동북아에서 배제하고 현상 변경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핵 동등성을 바탕으로 대만, 남중국해 등에서 더욱 공세적 활동을 할 수 있다. 일본은 ‘미국이 자국의 핵 공격을 무릅쓰고 일본을 방위할 것인가, 동중국해에 개입할 것인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변화에 놓여 있다.“
- 큰 틀에서 미국이 한일에 대해 ‘우호적 핵 확산’에 동의할까.
“미국의 미래 전략이 패권적으로 유지될 것인지, 보통 강대국으로 유지될 것인지를 봐야 한다. 패권적이라면, 핵을 유지할 것이다. 독일의 핵무장, 한일의 핵무장을 허용하면, 해당 국가는 미국과의 동맹이 필요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안보를 제공하면서 반대급부로 받았던 경제적 혜택이 사라져 보통 강대국이 되는데, 트럼프가 이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대북 제재 ‘허들’을 크게 낮춰서 북한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데, 이 같은 ‘먼저 무릎꿇기’가 북한에 통할까
“북한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가 답인 것 같다. 핵 없는 한반도가 한국이 북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 핵우산 제거’ 등의 북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측에서 아무리 허들을 낮춰도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대화에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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