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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북한정보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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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망명사건

황장엽 망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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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붕괴론
1) 배경

1994년 7월의 김일성 사망, 1995~1997 대홍수와 대기근에 의한 대량 아사자 발생, 식량난을 벗어나기 위한 북한 주민의 대량 이탈 등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체제 이완 및 균열 현상이 빚어지며 북한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1997년 2월 12일 북한 권력층에 큰 심리적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랫동안 북한 권력층의 핵심에 있었으며 주체사상의 이론화에 기여한 학자이자 교수 출신인 황장엽 당시 노동당 비서가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을 통해 망명한 것이다. 이를 황장엽 망명사건이라고 부른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망명한 사건은 당시 우리사회에서 퍼지고 있던 북한 붕괴론을 더욱 더 부추겼다.

2) 내용 및 경과

황장엽 망명의 상징성은 그의 경력에서 잘 드러난다. 일본 주오대학에 유학했던 그는 광복 당시 강제 징용자로서 강원도의 한 탄광에서 일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그는 서울을 거쳐 고향인 이북으로 올라갔으며, 처음에는 교사를 하다가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965년 이 대학의 총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1970년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이 되어 권력 핵심부로 들어갔으며,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1987년에는 북한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이 되어 주로 자신이 이론화에 적지 않게 기여한 주체사상을 해외에 전파하는 일을 했다. 1997년 2월 망명 당시 그의 직함은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였다.

그는 1997년 2월 12일 조선여광무역회사 사장인 김덕홍과 함께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으로 찾아와 망명을 요청했다. 그를 다시 북으로 돌려보낼 것인가 우리 정부의 요구대로 한국으로 보낼 것인가를 두고 중국은 선택을 해야 했다. 마침내 황장엽 일행은 중국 정부의 협조로 제3국을 거쳐 4월 20일 한국에 입국했으며, 그의 망명 동기는 ‘김정일 체제에 대한 환멸’인 것으로 밝혀졌다.

망명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이 됐다. 그의 발언과 활동은 주로 김정일을 둘러싼 신화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에 집중됐다. 그는 특히 김정일의 탄생은 물론, 성장, 학창시절, 권력 승계와 관련되어 북한 당국이 공식으로 내놓는 설명의 많은 부분이 왜곡, 과장, 또는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그는 김정일의 백두산 밀영 출생설과 관련하여 북한 당국이 그 증거로 내세웠던 구호나무의 존재에 대해, ‘그런 것은 없으며, 새빨간 거짓말이다’라고 증언하기도 했으며, 김정일의 후계자 확정 과정에 북한의 빨치산 1세대가 김정일을 적극 내세웠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를 ‘오해’라고 했다.

한편,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195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공산당 제21차 대회에 참가했던 당시 김정일을 직접 만난 기억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때 그는 김일성종합대 학생이었던 김정일을 ‘영리하고 호기심 많아 대학의 학과 내용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물어왔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3) 결과

황장엽 비서의 망명 직후 북한의 반응은 ‘남한에 의해 납치된 것’이라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면서 망명 사건 자체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곧 ‘그가 망명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변절을 의미하므로 변절자는 갈 테면 가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며 사실상 망명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후 3년상 기간의 종료와 김정일의 조선노동당 총비서 추대 등 주요 정치 일정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벌어진 황장엽 망명 사건에 대해 북한 당국은 사상적 동요와 불안의 파급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했으며, 이를 위해서도 이 사건의 의미를 애써 무시하거나 축소하려고 했다. 이후 북한은 황장엽을 암살하기 위한 공작조를 가동하는 징후를 보였으며, 그의 가족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했다는 정보도 파악되고 있다.

그의 존재는 북한 붕괴론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 반면, 북한에 감상적으로 기울어지는 사람들에게는 객관적이고 균형감 있게 북한을 바라보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황장엽 비서는 망명 13년 만인 2010년 10월 9일 자택에서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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