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북한에 머물렀더라면, 저는 아마 열차에 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박충권 의원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3만 4천여 명의 탈북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당선된 세 번째 탈북민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 탈북하는 대부분의 탈북자들과 달리, 박 의원은 권력과 특권을 누리며 안락한 삶을 살아온 북한 엘리트 출신입니다.
김정은 국방대학교를 졸업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종사했지만,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꿈꿀 수 있는 삶을 살다가 자신이 대다수 주민을 비참하게 만드는 망가진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 그는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망명했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만, 박 씨는 성공에 대한 열망이 남한 사회에 잘 맞았습니다. 그는 명문 서울대에 입학해 재료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현대제철에서 수석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RFA 한국어판은 박 후보를 만나 비교적 특권층이었던 북한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남한으로 온 이유와 정치 입문을 결심한 이유, 임기 동안 어떤 정책을 펴고 싶은지 등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는 길이와 명확성을 위해 편집되었습니다.
RFA: 북한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으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박: 북한 체제의 실상을 알게 되고 그 본질을 깨닫게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북한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 죽음의 기차에 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전략 무기를 개발, 생산, 연구하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군을 강조하던 시기에 저는 직장에 배치받았습니다.
문제는 북한 체제의 실체를 알게 된 후 제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던 미래가 완전히 암울하게 바뀌었고, 꿈과 희망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또한 북한 사회 자체가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졌고 주민들의 일상은 비참하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것이 잘못됐다고 목소리조차 높일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바꾸고 싶어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나가서 북한 체제의 실상을 알리고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RFA: 많은 탈북자들이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한 후에야 탈북을 결심합니다. 북한을 떠난 적이 없는 평양의 엘리트 청년이 어떻게 북한 체제에 회의감을 갖게 되었습니까?
박: 마음을 바꾸기 전에는 북한 체제의 확고한 옹호자이자 지지자, 충성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면서 북한 체제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한 공무원이 실수를 저질렀지만 뇌물을 주고 무마하거나, 다른 공무원이 권력을 갖고 싶거나 좋은 직책에 배치되고 싶어 뇌물만 주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보면서 공무원들의 부패가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학생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학생 간부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조직 생활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통제하는지 배웠습니다.
당시 저는 (전 지도자) 김정일이 쓴 에세이 두 권을 읽었습니다. 외부 세계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에 대한 김정일의 반박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부에서 지적한 모든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회주의는 전체주의, 행정 질서, 공허한 수사입니다. 모든 것이 맞습니다. 또한 북한은 획일적인 이념 체계를 이야기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적으로 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계획경제처럼 내가 내일 아침으로 뭘 먹을지 국가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렇게 이론적 전환이 일어났죠.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저는 이 시스템이 위에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된 박충권 당선자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RFA: 북한을 탈출할 때 남한에 도착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있었나요?
박: 네: 진로와 관련된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로동신문에서 남한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찾아보니 서울대가 있더라고요. '서울대에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남한에 온 뒤에도 서울대에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사회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고 북한 체제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한국 국가정보원(한국의 첩보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RFA: 남한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여기까지 오셨군요.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언제부터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박: 네: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돈을 버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결국에는 창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의 여당인 국민의당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으면서 정치 인생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는 항상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만큼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 끝에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서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RFA: 국회의원 임기가 5월 30일부터 시작됩니다. 4년의 임기 동안 어떤 일에 집중할 계획이신가요?
박: 네: 저는 탈북민 출신이고 공대생이라는 이력이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와 대북정책, 과학기술과 산업 분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먼저 북한이탈주민들이 초기 정착을 넘어 취업과 창업 등 남한 사회 내에서 지원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법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또한 남북한 체제를 순차적으로 경험한 사람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또한 한국 국민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을 분별하여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연사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저는 북한의 무기 개발을 전공했기 때문에 한국의 안보와 국방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입니다.
과학기술과 산업 분야의 젊은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만큼 과학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RFA: 남한 내 북한이탈주민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박: 네: 현재 북한이탈주민 지원 정책은 초기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남한으로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지원 기관과 인력은 오히려 확대되었습니다. 변화된 상황에 맞춰 북한이탈주민 지원 정책도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의 취업은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설령 취업을 하더라도 장기근속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북한이탈주민의 적응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도 처음 남한에 왔을 때 남북한의 격차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북한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남한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그 자부심은 무너졌습니다. 대학원 초기에는 하루에 4시간도 못 자면서 공부를 했어요. 너무 불쌍하고 아는 게 너무 적었어요. 하지만 동기들과 동료들이 저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도와줬어요. 그래서 빨리 적응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RFA: 북한 주민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셨는데요. 북한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박: 네: 북한의 인권 문제라고 하면 거의 모든 것이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혹한 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소유권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기본권을 행사할 경우 가혹한 처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접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외부 세계와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여 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생각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북한 정권이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다른 전략을 찾을 수 있도록 외부에서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 정권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북한을 외부 세계와 단절시켜 통제하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북한 주민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RFA: 북한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젊은 세대들의 의식 변화를 느낀 사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 네: 대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고향에 가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저녁을 먹었는데요. 북한은 정전이 잦아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등불을 켜고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전기가 잠시 들어왔고 우리는 모두 매우 기뻤습니다. 하지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기가 끊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친구가 함흥에서 5시간 동안 정전이 되었다는 뉴스가 신문에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북한에서 정전은 사고가 아니라 일상입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사고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북한을 탈출하기 직전,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시작했고 김정은이 매우 훌륭한 지도자이며 천재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소문을 들은 젊은 친구들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얼마나 잘할 수 있겠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런 표현에 둘러싸인 적이 꽤 많았습니다.
한국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된 박충권 씨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RFA: 지난해 말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규정하고 남북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 네: 북한 지도부가 체제 생존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김씨 왕조의 4대 세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주민 의식의 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전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민들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남한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남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닌 적대국가로 규정함으로써 주민들 마음속에 한국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RFA: 남북한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박: 네: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통일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가 북한 정부의 전략 변화로 이어져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된 후 통일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통일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 당국이 남한은 통일의 대상이 아니며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말할수록 남한은 북한 주민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인권 개선과 사고방식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통일이 되었을 때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RFA: 선출직 대표로서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요?
박: 네: 저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제가 왜 탈북했는지 궁금해할 것입니다.
자력으로 남한에 와서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좋은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잘 살다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됐다고 하면 상당히 충격이 클 것입니다.
북한 체제에 충성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미 마음을 바꿨지만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식이 북한 주민들, 특히 엘리트층과 젊은이들에게 퍼져나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세금 낭비가 아니라 국회에서 입법 활동을 잘했다는 인정을 받는다면 더 큰 메시지가 될 것 같습니다.
클레어 리 번역. 유진 웡과 말콤 포스터 편집.-